정한수는 민재의 존재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가 꿈속에서 만난 민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민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재가 그저 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한수는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이 혼란은 더 이상 꿈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현실에서조차 그를 따라오는 의문들이 쌓여갔다.
그가 출근하는 길,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일상적인 하루가 시작된 듯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지나갈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유난히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것이 그냥 기분 탓이라 생각하려 했지만, 그 기분은 점점 더 강하게 그를 짓눌렀다. 심지어 그의 동료들마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
“한수 씨, 괜찮아요?” 그의 상사가 다가왔다. 정한수는 그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사의 눈빛 속에는 어떤 불안과 의혹이 담겨 있었다. 정한수는 이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점심시간, 그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이제 그걸 알았구나.”
정한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 순간 움찔했다. 그는 민재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마치 이미 정한수를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너도, 결국 알게 된 거야.”
정한수는 그 사람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었다. 그저 눈앞에서 그 사람이 떠날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민재를 찾아 헤매던 그 모든 시간이 허상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밤, 정한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민재가 아닌, 자신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가 아는 정한수가 아니었다. 그 자신은 점점 더 이상한 행동을 보였고, 정한수는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려 했지만, 그 사람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너는 나를 보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가 아닌 다른 나일지도 몰라.” 그 말이 정한수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는 침대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그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이건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정한수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알고 있던 현실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과연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그가 조작한 가상 세계의 일환에 불과한 것인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정한수는 한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바로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가상 현실에서 만들어낸 세계일 수도 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 현실인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의심을 풀기 위해 반드시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가상 세계라면, 내가 만들 수 있는 건가?”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실험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실험이 자신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가능성에까지 도달했다. 정한수가 그동안 마주한 현실의 모든 사건은, 그가 조작된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일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덮쳤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이 느낀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 회사에서 바로 뛰쳐나왔다. 그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 현실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가 진짜로 경험한 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다시 민재를 찾으려고 했지만, 민재는 더 이상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민재는 그가 만든 기억 속에서 살아남은 캐릭터일 뿐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회사 근처의 한 작은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오래된 책을 찾았다. 책은 "가상 현실과 인간의 심리"라는 제목이었다. 책을 펼치자, 그 안에는 자신이 느끼던 혼란과 일치하는 구절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세계는 실험을 위한 데이터일 뿐이다. 당신은 단지 그 실험의 일부일 뿐.”
정한수는 책을 덮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진짜 현실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가상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실험의 실험자일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