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 e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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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21:23조회 58댓글 4sweetpea_ysy
나는 이야기꾼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흐르고,
사람들은 기억을 쌓아가며 살아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당연했던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억은 물처럼 새어 나갔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이었다.

어제 먹은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다든가,
약속 장소를 헷갈린다든가.
하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가족을,
심지어 걷는 법조차 잊어갔다.

나는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기억을 가진 자’였다.

그리고 내 역할은 단 하나.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아 기록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아니, 이름이 있었던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갈망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나는 어디서 왔죠?”

나는 조용히 기록을 열어봤다.
그의 이름, 그의 가족, 그의 직업.

하지만 그 페이지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또렷했던 글자가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바래져 있었다.

“당신은 여기에 속해 있었어요.”
나는 희미한 단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잠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나는 두려웠다.
처음에는 남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젠 나도 변하고 있었다.

내가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무엇을 적었는지.
내 손에 들린 책만이
내가 살아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 앞에 한 아이가 찾아왔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깊고
어두웠다. 그는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누구죠?”

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나는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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