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보이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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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18:40조회 23댓글 0유키노텐시
[2화] 보이지 않는 여름


||| 보이지 않는 사람


맨몸으로 튀어 나온 밤거리는 생각보다 서늘했고,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 큰길가를 지나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내 눈을 아프게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더 어두운 곳, 더 깊은 곳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편의점의 인공적인 불빛마저 사라진 골목에 들어서서야 나는 비로소 걸음을 늦췄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소리 없이 지나갔다. 보도블록 틈새로 비집고 나온 이름 모를 풀들이 내 신발 끝에 닿았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보잘것없는 것들이,

오직 이 밤의 정적 속에서만 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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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

얼마나 걸었을까. 몸속 깊숙이 박혀 있던 독서실의 텁텁한 먼지 냄새가 빠져나가고,

대신 눅눅하지만 비릿하지 않은 밤꽃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골목의 끝자락, 녹색잎 덩굴이 커튼처럼 드리워진 높은 담벼락 앞에 멈춰 섰다.

가로등 하나가 졸음이 겨운 듯 깜빡거리며 붉은 벽돌 위로 노란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 벽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시멘트의 딱딱한 질감이 얇은 교복 셔츠를 뚫고 전해졌다.


그때였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오답과 문제, 등수, 부모님의 기대 같은 무거운 걱정들이 신기하게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소리들뿐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 밤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의 마찰음. 그 무해한 소음들이 내 뾰족해진 신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더는 갈 곳이 없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그 차가운 벽돌에 더 깊이 몸을 맡겼다.


편의점에서 사 온 캔커피의 차가운 표면을 이마에 갖다 대며 눈을 감자, 지끈거리던 두통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항상 잿빛이던 나의 여름이, 그 담벼락 아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 순간, 지독하게 외로웠던 나의 여름이 조금은 덜 이글거렸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그 존재가, 마치 이 막막한 계절을 함께 견뎌주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차마 말을 걸지 못한 채, 벽돌 너머로 번지는 그 고요한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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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캔의 고리를 당겼다.


''하...''



정적을 깨뜨리는 작은 소리.


딸깍-
캔 따는 소리가 고요한 골목에 쨍하게 울렸다.

독서실의 소음과는 결이 다른, 아주 투명하고도 날카로운 마찰음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혹시 밖에 누가 있나요?"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투명한 목소리였다.

마치 여름밤의 한 조각을 베어 문 것 같은 청량함.

나는 들이키려던 커피를 멈춘 채 숨을 죽였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기척이 담벼락의 거친 질감을 타고 내 등 뒤로 전해졌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낯선 온기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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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가 들렸어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떨리고 있었다.

"네. 여기는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아서 아주 고요하거든요. 바람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방금 당신이 캔을 따며 내뱉은 작은 한숨 소리까지."


벽 너머에서 그림자가 작게 움직였다. 달빛을 받아 일렁이는 실루엣은 마치 수면 위에 뜬 달 그림자처럼 가늘고 고왔다.

그 너머에 누가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직감했다.

이 벽 너머에 누군가 있다. 그것만으로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목소리가 참 따뜻하시네요. 꼭... 따가운 햇빛이 쏟아지는 여름날의 그늘 같아요."

그 말 한마디에 내 장 어딘가가 덜컹 내려앉았다. 평생을 등수와 숫자로만 평가받던 나에게, 누군가 '그늘' 같다는 말을 해준 것은 처음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 사람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맞물리기 시작한 열아홉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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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갑자기 소리 내서 놀라게 했다면 죄송해요. 여기가 너무 조용해서 저도 모르게 앉아버렸어요."

내가 말했다.

담장 너머에서 대답 대신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에 들어간 힘이 스르르 풀렸다. 이번 여름 들어 들은 그 어떤 소리보다 달콤한 선율이었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나의 여름이 조금은 덜 이글거렸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그 존재가, 마치 이 막막한 계절을 함께 견뎌주고 있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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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를 3화와 합쳐서 올렸어요. 다음은 4화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

https://curious.quizby.me/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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