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유령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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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09:48조회 73댓글 0유키노텐시
[1화] 보이지 않는 여름


|||유령의 교실


100.


빨간 색연필로 그어진 동그라미는 선명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은 반대로 바짝 메말라 있었다.


교실은 거대한 건조기 같았다.
아이들이 내뱉는 뜨거운 숨결과 종이가 쓸리는 마찰열이 뒤섞여 공기는 눅눅하고 무거웠다.


창밖의 여름은 저토록 찬란하게 푸른데, 창틀에 가로막힌 우리의 계절은 무채색의 활자들뿐이었다.


"야, 이서준. 이번에도 전교권이라며? 비결 좀 알려줘."


억지로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친구의 손길이 가시처럼 따가웠다.


이곳에서 친절은 부채였고,
관심은 감시였다.


나는 대답 대신 샤프를 필통에 집어넣었다.

손가락 끝에 묻은 거뭇한 샤프가루가 꼭 내 몸을 갉아먹고 남은 잔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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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7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는 사형 선고처럼 울려 퍼졌다.


f(x)=...


칠판 위를 빼곡하게 채운 x와 y의 미로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수면 위를 맴도는 소음 같았고, 내 눈앞의 글자들은 개미 떼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뚝.'

옆자리 아이의 샤프심이 부러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작은 소리에도 아이들은 일제히 미간을 찌푸렸다.

예민함이 칼날처럼 날 서 있는 공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법을 잊은 채, 오직 앞사람의 등 뒤에 적힌 등수만을 쫓는 유령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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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아, 저녁 먹고 바로 스터디 카페 갈 거지?"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화면을 밝혔다. 따뜻한 안부 대신 도착한 건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교실 안의 산소가 모자란 것 같아 나는 자꾸만 교복 셔츠 깃을 만지작거렸다.



해 질 녘, 노을이 교실 깊숙이 들어와 책상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형광등보다 은은하고,
미온의 열이 느껴진 그 순간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빛조차 눈이 부시다며 커튼을 쳐버렸다. 어둠 속에 갇힌 채 형광등 불빛 아래서 다시 펜을 잡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망가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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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독서실을 빠져나온 내 발걸음은 집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번화가의 소음도, 학원가의 불빛도 없는 곳.

질식할 것 같은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숨구멍이 뚫려 있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골목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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