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죄와 벌의 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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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18:01조회 40댓글 2🐼
경고⚠️
살인 묘사 및 불륜 관련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목한 가정.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열 살 난 딸, 나키가 있었다.

내일은 오랜만의 가족 여행 날.
하지만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밤, 나키의 방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키는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 울고 있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유이:
"...딸, 왜 울고 있어?"

나키는 숨을 고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키:
"...흐윽… 또 악몽이에요… 그곳에서… 어떤 남자가… 엄마랑 아빠를… 죽였어요…"
"...지금까지 꿨던 어떤 꿈보다… 더 끔찍했어요…"

잠시 침묵.
유이는 침대 곁에 앉아 나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유이:
"또 악몽을 꿨구나… 괜찮아."
"설령 엄마 아빠가 곁에 없더라도, 네 옆에는 예티 인형이 있잖니."

유이는 침대 위에 놓인 하얀 예티 인형을 들어 나키 품에 안겨주었다.

유이:
"이 아이가 널 지켜줄 거야. 분명히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나키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작은 손이 인형을 꼭 끌어안는다.

나키:
"...만약… 엄마 아빠가 정말 없어진다면… 이 인형이… 절 지켜주겠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유이:
"그래, 딸. 잘 자."

불이 꺼지고, 방문이 닫힌다.
방 안에는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또각.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무언가가 집 안을 살피듯.
나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키:
"...엄마? 아빠?... 누가 온 것 같은데…"

불을 켜려 스위치를 눌렀지만—
딸깍.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정전인가?
심장이 점점 빨라진다.
침대 옆 서랍.
그 안에는 작은 손전등이 있었다.
나키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꺼냈다.

찰칵.
희미한 빛이 어둠을 가른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빛이 닿는 부분만이 현실이고, 그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같았다.

그리고—
복도 끝.
빛이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
무언가가…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나키의 숨이 멎는다.
예티 인형이 그녀의 품 안에서
이상하게도
조금 더 단단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또각.
발소리가,
이번엔
더 가까이서 들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나키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타닥, 타닥.

맨발로 복도를 달린다.
손전등의 빛이 벽을 흔들리듯 스치며 지나간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은 귀 옆에서 뛰는 것처럼 울렸다.

그 순간—
복도 한가운데,
빛이 멈췄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긴 머리카락이 어둠에 녹아내리듯 흘러내린다.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성:
"...꼬마."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여성: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당장… 도망쳐."

나키의 손전등 불빛이 잠시 흔들렸다.

나키:
"...어?"

다시 시선을 올렸을 때—
그 여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나키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옆집 언니겠지. 분명히 그럴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다시 부모님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아까 들리던 발소리도, 기척도 사라진 채
집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문 앞에 도착한 나키는 손잡이를 잡았다.
차갑다.
문을 열었다.

나키:
"...엄마?"
"...아빠?"

대답이 없다.
방 안은 어둡고,
커튼은 바람도 없는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키는 한 발,
또 한 발.
침대로 다가간다.
심장이 불길하게 쿵, 쿵 울린다.
손전등을 침대 위로 비추었다.
이불 아래에
분명히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키의 목이 마른다.

"...엄마…?"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붙잡는다.
그리고—
이불을 걷는 순간,
손전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빛이 비스듬히 돌아가며
침대 위를 비춘다.
붉다.
너무도,
붉다.

피에 흠뻑 젖은 침대
부모님은 없었다.

공포에 굳어 있었다.
나키의 시야가 흔들린다.
그때,
등 뒤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후—
아주 가까이서.
그리고 속삭임.

"...말했잖아. 도망치라고."

그 순간부터—
나키의 지옥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시작되었다.

그 순간—
챙—

밖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칼날이 스치는 소리.
나키의 몸이 얼어붙는다.
곧이어 무거운 발소리.

쿵… 쿵…

누군가가 집 안을 걷고 있었다.
나키는 본능적으로 침대 아래로 몸을 굴려 넣었다.

먼지와 피 냄새가 뒤섞여 숨이 막힐 듯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숨소리조차 들키면 안 된다.
방문이 천천히 열린다.

끼익—

침대 아래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낯선 남자의 다리.

그의 손에는—
커다란 마체테가 들려 있었다.
칼끝에서 붉은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툭… 툭…

그때,
복도에서 허둥대는 발소리.
"사, 살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짧은 비명.
그리고 둔탁한 소리.
조용해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잠시 후,

마체테를 든 남자가 방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일정했다.
침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살폈다.
옷장을 열어보고,
커튼을 걷어보고,
책상을 발로 차본다.
나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제발…’

침대 바로 옆까지 다가온 발.
칼끝이 바닥을 긁는다.

긁—
하지만—
잠시 멈췄다가,
다시 멀어진다.

남자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방을 나갔다.

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적막.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키는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기어 나오듯 침대 아래에서 몸을 빼낸다.
무릎이 후들거린다.

그리고—
방문 앞.
한 남자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검은 옷차림.
손에는 가방이 쥐어져 있다.

아까 복도에서 들린 비명의 주인.
…도둑이었다.
아마도 집에 침입했다가
또 다른 침입자와 마주친 것일까.

나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울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살아남아야 해.’

작은 숨을 내쉰 뒤,
나키는 떨리는 손으로 도둑의 옷을 더듬기 시작했다.

주머니.
안주머니.
가방.

무언가가 손에 걸린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
열쇠였다.
낯선 문양이 새겨진 작은 열쇠.
집의 것일까?

아니면… 저 남자의 것일까?
복도 끝 어둠 속에서
어디선가 다시—
또각.
발소리가 들렸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키의 손 안에 쥐어진 작은 열쇠.
차갑다.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려왔다는 듯.

‘이 집의 열쇠는 아닌데…’

그 순간, 기억이 스쳤다.
지하실.
아버지, 케이가 단호한 얼굴로 말하던 모습.

케이가:
“지하실에는 절대 내려가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때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나키는 복도 끝을 바라본다.
집 안은 다시 조용하다.

결심한 듯,
천천히 지하실 문 앞으로 걸어간다.

문은 오래되어 보였다.
손잡이는 녹이 슬어 있다.
열쇠를 꽂는다.

철컥.

너무 쉽게 돌아갔다.
마치—
처음부터 이 열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위로 흘러나왔다.
곰팡이 냄새, 오래된 먼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금속 냄새.
나키는 손전등을 켠 채 계단을 내려간다.

끼익… 끼익…

나무 계단이 체중에 반응한다.
아래는 어둡다.

빛이 닿는 곳만 현실이고, 그 외는 심연.
지하실 바닥에 도착했을 때,
벽 한쪽에 커다란 천이 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천을 걷는다.
그 아래에는—

수십 장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전부,

엄마— 유이의 사진.
젊은 시절의 모습.

지금보다 더 앳되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사진 속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케이가 아니었다.
백발의 남자.
길고 희미한 눈매.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본 적 없는 얼굴.

그의 손은 유이의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다.
두 사람은 연인처럼 보였다.
나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사람… 누구야…”

그 순간,
뒤쪽 벽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나키가 빛을 비춘다.
또 다른 사진.
이번엔—
유이가 젊은 시절의 아빠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사진 아래, 붉은 펜으로 적힌 글씨.

“죄는 반드시 돌아온다.”

나키의 숨이 멎는다.
그때—
지하실 계단 위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려오는 발소리.
또각.
익숙한 소리.
마치—
아까 복도에서 마주친
그 기모노 여인의 발걸음처럼.

그리고 속삭임이 들려온다.
"...이제 알았구나, 나키."
"...네가 본 그 사람은—"

손전등 불빛이 깜빡인다.
그리고 완전히 꺼졌다.
지하실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숨결이 바로 뒤에서 느껴졌다.

지하실의 어둠 속.
꺼진 손전등 너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을 봤구나."

나키는 움직이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

백발.
생기 없는 눈.

마체테를 들고 있던 그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토미.
토미는 벽에 붙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네 엄마는, 내 사람이었어."

나키의 숨이 떨린다.

토미는 낮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날 버렸지. 케이가라는 남자와 도망쳤다."
"...난 30년을 준비했다."

30년.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사랑과 배신.
복수.
토미는 나키를 바라본다.

"...오늘은 그 끝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나키의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기모노 여인의 경고.
지하실의 사진.
아버지의 금지.
어머니의 불안한 눈빛.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행복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부서진다.
여행.
생일.
웃음.

전부—
거짓 위에 세워진 집.
나키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럼… 저는 뭐였죠?"
"...엄마 아빠가 만든… 죄의 증거인가요?"

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답이었다.
나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랑받았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뒤틀린다.
그리고—
나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끝내주세요."

토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사람들."
"...엄마랑 아빠."
"...당신 원한… 제가 대신 풀어드릴게요."

그것은 부탁이었을까.
아니면 복수에 동참하는 선언이었을까.

잠시 후—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키는
지하실에서 나왔다.
부모님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딸을 바라본다.
나키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거짓말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모든 걸 증명했다.

잠시 후,
불이 번졌다.
커튼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집을 집어삼켰다.
나키는 집 밖으로 걸어나왔다.
뒤에서 타오르는 불꽃.
안에는—

그녀의 부모와
30년의 원한을 품은 남자가 있었다.

이웃들의 비명.
신고.
사이렌 소리.
토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체포되었고,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형 선고.

며칠 뒤.
나키는 보호시설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지켜줄 부모도,
예티 인형도 없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보호자가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고아.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눈물이 없었다.

사랑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닮아버린
차가운 침묵.
멀리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린다.

“30년 전 불륜 관계로 인한 복수극… 살인마 토미 사형 확정…”

나키는 창밖을 바라본다.
불타던 집의 잔해 위로
연기가 아직도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게… 죄와 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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