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3 23:24•조회 60•댓글 1•잔월
여름이 너무나 싫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만물은 저마다의 생기를 발산하고,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대는 계절. 작열하는 생의 한복판에서 나만이 퇴색해 가는 것 같았다.
귓전을 맴도는 매미의 단말마와 녹진하게 내려앉은 열기, 그 모든 것이 지독하리만치 생생해서 도리어 권태로웠다. 세상은 청록의 빛깔로 충만한데, 어째서 내 안의 풍경만 이토록 황량한지. 작금의 찬란함이 언젠가 퇴락할 것을 알기에, 나는 눈부신 것들을 쉬이 사랑하지 못했다. 영겁을 약속하듯 일렁이던 수면도, 무구한 웃음소리도, 미망처럼 아득해진 어느 날의 다정도 결국엔 소실될 테니.
돌이켜 보면 청춘이란 필연적인 상실을 유예한 채 찰나의 영원을 맹신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미처 여물지 못한 계절을 영원이라 착각했고, 작별의 전조를 알아채지 못한 채 서로의 잔상에 기대어 유한한 나날을 의미 없이 보냈다. 그리고 계절이 퇴장한 자리에는 속절없이 바래 버린 기억과 미처 매듭짓지 못한 감정의 편린만이 부유했다.
나는 여름이 싫다. 모든 것이 절정에 달한 순간조차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그 찬란한 작열마저 소멸을 향한 발악에 불과함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