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2 19:50•조회 38•댓글 0•I.D
상사화가 피어나는 늦여름, 아름다운 햇빛 아래 더욱 빛나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함께 있으면 빛이 나는 것 같았고, 매일이 즐거웠다. 그뿐이었다.
"아아, 학원 가기 싫다."
"가야지. 학원비 날리고 싶냐?"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그래서 늘 함께 학교를 나섰다. 그 아이는 늘 웃고 있었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가끔 시선이 허공을 훑는 것이 느껴졌기에.
"너는 학원 가는 게 좋아? 난 학원비고 뭐고 짜증 나는데."
공부라면 질색을 했지만 놀랍도록 잘했다. 학원이 많은 탓일까, 그냥 공부머리가 좋은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좋진 않지. 그냥 돈 아껴야지, 싶어서."
나는 학원을 다니지 못한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래서 종종 그 아이에게 공부를 배우곤 했다. 그래서 늘 부러웠다. 학원도 많이 다니고, 공부도 잘하는 그 아이가.
"대단하네. 난 그런 생각 저언혀 안 들거든."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좋았다. 나도 안다. 이상하다는 거.
"난 학원 간다? 잘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흔들었다.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탓일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 잘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할 줄 모르니까. 스스로를 위로했다.
".. 가기 싫다."
집에는 술 마신 괴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괴물덕에 살아남았지만.. 아무래도 두려웠다. 언제 맞을지, 대학교는 갈 수 있을지. 모든 게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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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또 학원. 학원에 끝이란 없었다. 매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10시까지 학원에서 썩어 들어갔고, 정해진 양의 공부를 마치기 전까지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엄마가 너 믿는 거 알지?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달콤한 말 뒤에 숨은 진심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라. 그렇게 키워준 빚을 갚아라.
"... 네."
이럴 때면 그 애가 부러웠다. 혹은 보고 싶었다. 뭐랄까, 공감 하나 할 줄 모르는 모습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어찌 됐든 공부 하나 안 하고 잘 사는 그 애에게 시기를 느꼈다.
[잘 들어갔어? 난 또 학원 간다...]
[ㅇ]
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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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목에 알사탕이 걸린 것처럼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 야."
그 아이는 여김 없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점점 바람이 불어오는 데도 동요하지 않았다.
"왜?"
"... 아니야."
그 아이의 표정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답답해죽겠네, 뭔데? 일주일 전부터 계속 이러잖아."
"... 아니, 그냥.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요즘 네가 좀 좋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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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고백도 참 특이하게 했다. 네가 좀 좋은 것 같아... 누가 봐도 고백인데, 본인만 모르는 모양이었다. 참 재밌는 일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너 그거, 고백인 거 알아?"
"...뭐? 뭐, 뭔 헛소리야."
알고 있을까. 헛소리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고 있다는 걸. 그래, 나도 네가 좋아...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 변했다. 네 마음속의 나도, 내 마음속의 너도.
...
"...누구니?"
내게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새하얗게 잊고 있었다. 요즘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감시였던 모양이다.
"그냥.. 친구예요."
"친구라.. 친구끼리 좋네, 고백이네.. 이런 말도 하니?"
다 들었구나... 잘났다. 아주 잘났다. 돈 많고 교육열은 높아서.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내게 비밀이란 존재해선 안된다.
"나는 널 정말 믿었는데... 결국 배신했구나."
"...아니에요."
그래, 부담스러운 행복이었다.
내게 존재할 수 없는, 과분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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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그 아이의 말투가 달라졌다. 좀 더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 솔직히 좋았다. 난 여전히 그 아이가 좋으니까. 사소한 대화도 조금은 더 가까워진 듯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너, 니... 자꾸 밖에 싸돌아다녀? 엉?"
괴물의 습격. 혹은 괴물의 탐색? 그런 게 시작되면 우리 사이는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저 괴물의 습격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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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래?]
[?]
[할 말 있어.]
바보같이 만나자고 해버렸다. 차라리 문자로 거짓말이라도 늘어놓을 걸 그랬나... 아니, 그래도 확실하게 끝내는 게 좋으니까. 그 애의 답이 오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ㅇㅋ]
...
"왜 불렀냐? 이 저녁에."
여전히 저 얼굴이 좋았지만,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제 너 못 만날 것 같아."
미안했다. 서운했다. 하지만 내가 느낄 자격이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이 관계의 끝을 알린 쪽은 나니까.
"..왜냐고 안 물어보네. 이사 간대, 엄마가."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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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습격이 시작되기 전에 끝나버렸다. 습격받을 초소가 사라졌고, 폐허가 된 채 부서졌다. 갑자기 이사를 간다니, 말이 되나.... 부정해도 부정해도 의미가 없었다.
돈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서 가능성이 넘치니까. 별 말을 잇지 않고 돌아섰다. 공허했다. 좋아해도 붙잡을 수 없었다. 너는 너무나 빛나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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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에러 작성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서 단편 하나 놓고 갑니다.. (총총)
부유하지만 극한의 교육열과 부담에 지치고 망가져 관계의 끝을 택한 소녀와 도박으로 무너진 집안에서 삶의 희망을 얻었으나 희망을 붙잡지 못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DAY6 - inside out 들으며 작성했습니다!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한 마음에 개연성을 집에 두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 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