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2 19:21•조회 23•댓글 0•불명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많아야 고작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절에 나는 입양아의 삶을 살았다. 다시 밉보이면 고아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나이에 맞지 않게 점잖고 똑부러지게 행동하려 노력했고, 새 부모님도 그런 나를 참 대견해 했다.
내가 그 집에서 사고를 쳤을 땐 이제 초등학교 5학년생이 되는 해였다. 양말을 신고 뛰듯 걷다 미끄러져 그만 탁자를 건드렸고 탁자 위 누가 보아도 고가로 보이는 화병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 누가 볼 세라, 소리 소문도 없이 나는 쪼개진 화병의 조각을 이로 잘게 부숴 위장으로 삼켜 내었다. 뾰족한 부분이 식도에 찔리면 침을 삼켜 흘려보냈고, 잘 씹어지지 않는 조각은 잇몸에 피가 철철 나도록 세게 삼켰다.
화병과 같이, 나는 경고 없이 말라가고 있었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여름 밤의 악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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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점점 꿈틀대었다. 꿈틀대다 못해 뒤틀렸다. 먹은 조각들이 하나하나 합쳐쳐 장 속에서 화병이 다시 재생되나 싶은 기분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변을 보았는데, 항문이 너덜너덜해 있었다. 고통도 쾌락도 느끼지 못 했는데 내 항문은 이미 거덜나 있던 것이었다. 비누로 그곳을 빨래하듯 문대고, 피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손가락으로 막았다. 비누는 더러워졌고, 피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의 정신병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신병의 미학, 몸집보다 큰 화병을 전부 삼켜 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어른에게 알리지 않은 것. 정신병이 얼마나 고귀한지 보라. 당신은 이렇게까지 버림에 절박했던 적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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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고아원은 아주 낡았다. 지붕도 없어서 비와 눈이 오는 날이면 얇은 천막을 쳐 그 아래에서 이백 명 가량의 아이들이 피신했다. 원장은 아이 하나를 팔면 약 삼백만 원은 받는다. 그 돈은 모두 자신의 유흥에 낭비했다.
한 아이가 축구를 하다 유리창 하나를 깼던 적이 있다. 아이는 죽기 직전까지 구타 당했고 토를 몇 번이나 했는지 물도 못 삼킬 정도로 식도가 상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아이가 입양 당했을 때, 새 부모에게 유리창 값을 물어내라 요구했다.
부모가 돈을 주지 않고 아이를 포기하자 원장은 모든 탓을 아이에게로 돌렸다. 그러게 왜 축구를 해서, 그러게 왜 하필 그 비싼 유리창을 깨서, 왜 하필 네가 태어나서. 아이는 고아원을 떠났다. 그 순간에 나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돈, 돈. 돈 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 요즘 세상인가. 당신이 나의 이야기를 편히 듣고 있을 지금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태어났으며 누군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 80억 명 중 그 한 사람 없으랴?
그래, 내 이야기는 정말 지루하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따분한 내용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치 아닌 이치다. 내가 일곱 살까지 읽었던 약 칠십 권 가량의 책들 전부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희망적인 얘기는 딱 질색이다. 이 세상에 희망은 1만 분의 1 확률로 잘 없다. 절망과 증오만 있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