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1 00:08•조회 30•댓글 0•이다음
아가, 그거 알고 있니? 저 바다에는 인어들이 살고 있다는 걸. 그래. 검은 생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인어 말이지. 출항하는 어부들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수호신같은 분들이란다. 못 믿는 표정인데, 정말이야. 나의 아버지도 태풍이 오는 날 출항하셨다가 인어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돌아오셨단다. 그러니 아연이 너도 바다를 소중하게 생각하렴. 인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가 곧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에. 내 예감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 달 뒤, 할머니는 바닷가 근처에서 실종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인어가 할머니를 꾀어간 것이라고 했다.
***
쿵–, 캐리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누웠다.
"아, 제발!!"
이 무거운 캐리어를 저 언덕 너머 집까지 가져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찔해졌다. 심지어 오늘은 폭염주의보까지 있는데!
...그래도 뭐 어쩌겠어.
끙끙거리며 다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올라갔다. 이상하게 언덕이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것 같았다.
"으아.... 아..."
곡소리를 내며 겨우 집 대문 앞에 섰다. 어렸을 때는 이 집이 대저택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냥 전원 주택이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일단 마룻바닥에 털썩 누웠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담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느새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중천이었는데.
"할머니..."
몽롱해진 정신으로 그 단어를 말했다. 너무 오랜만에 발음해서 그런가, 어쩐지 조금 목소리가 떨려왔다. 이 집은 원래 할머니의 것이었다. 할머니가 실종되기 전까지만 해도.
갑자기 기침이 나왔다.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집 안에는 먼지가 장난 아니었다. 이 집에 더 있다간 내 폐가 흡연자 폐보다 더러워지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쪼그려 앉아 연신 기침을 하다 겨우 고개를 올려 앞을 보았다. 바다였다. 바다는 할머니를 집어삼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언덕을 내려가 바다로 달려갔다. 이러다 나도 바다에 홀려 죽는 건 아닐까. 하지만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바다가 내 장례식장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모래사장에는 웬 남자가 앉아있었다.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우뚝 버티고 있는 등은 꽤 처량해보였다.
핸드폰은 아까 전부터 계속 울리고 있었다. 뻔했다. 엄마겠지. 협박, 회유, 호통... 아무것도 안 통했으니 이제 무슨 짓을 할까. 핸드폰은 그냥 꺼버렸다. 엄마에 대한 생각도 같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곳으로 와서 첫 친구를 사귈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저기요."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몸도 같이 틀어지며 다리, 아니... 정확히는 원래 다리가 있어야 했던 곳도 같이 보였다. 그곳엔 꼬리가 있었다. 꼬리에는 반짝이는 비늘도 함께 붙어있었다.
...잠깐, 꼬리? 비늘?
너무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면 분명 나는,
인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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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있어요
그렇다고 양산형 로판 연재 중단은 아니에요
이다음에 만나요🫶